博文

도선국사의 공부터, 또아리 튼 구렁이가 머리 맡에

图片
  멀리서 본 백운사 연화당. 뒤쪽으로 바위절벽이 둘러싸고 있다. 전남 광양의 백운산. 해발  1200m 급이다. 백두대간의 끝자락이 바다를 마주보고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뭉친 지점이다. 필자가 백운산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도선국사가 죽을 때까지 머물렀던 산이라는 점 때문이다. 한국 풍수지리의 대가였던 도선국사는 왜 백운산에서 인생 후반부를 거의 보냈던 것일까. 도선은  35 년간 백운산 옥룡사에서 보냈다.  70 대 초반에 죽었다고 보면  35 세 이후로 백운산에서 살았던 것이다. 풍수적인 이유가 있었다면 무엇이었을까? 풍수의 대가가 임종을 맞이했던 산. 삼복더위가 확실하게 물러나간  10 월 초, 백운산을 수백 번 넘게 오르내렸던 전문가 정다임 작가의 안내를 받아 백운산  900m  해발에 위치한 백운사(白雲寺)로 갔다. 산 밑에서 올라가는데 산 전체에 운무가 가득하다. "운무가 이렇게 자주 낍니까?" "자주 낍니다." 산 이름에 백운(白雲)이 들어간 이유를 알겠다. 산 북쪽으로는 섬진강을 끼고 있고 남쪽으로는 남해 바다를 마주하고 있다. 양쪽에서 운무가 올라올 것 아닌가. 운무가 많이 끼면 산의 본래면목(本來面目)을 보기가 어렵다. 본래면목을 사람에다 비유하면 그 사람의 밑천에 해당한다. 밑천이 어디까지인지를 알 수가 없는 것이 진인(眞人)이다. 진인은 패를 알기 어렵다. 깊이가 한정 없어서 쉽게 추단하기 어려운 캐릭터가 진인이다. 그래서 중국 여산(廬山)의 본래면목을 알기 어렵다는 시가 유명하다. 도선국사는 왜 이곳을 선택했을까 여산도 주변에 강과 호수들이 둘러싸고 있어서 1년에 3분의2는 운무가 끼어 있다. 역대 중국의 은자, 도사들이 가장 숨어살고 싶어 했던 산이 여산이다. 난세와 속세로부터 자신을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. 도선국사도 자취를 감추고 싶어 했던 것일까?  900m 까지 비포장도로가 뚫려 있어서 쉽게 백운사에 도착했다. 정다임 작가 말로는 상백운, 중백운, 하백운이 있는데 현재의 백운사는 하백운에